이후 황제는 남한과 에티오피아가 향후 문화교류전류를 끊임없이해 나가길 희망하였고 그의 꿈을 담아 1968년 11월 25일 황제의 등극 메모리일에 맞춰 ‘이디오피아 벳’을 오픈한다. 1968년 5월 19일 하일레 셀라시 황제는 참전메모리관 맞은쪽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메모리탑 준방식에 참석을 하며 공지천변을 찾게 된다. 수춘 에티오피아 두 번째 담화 금일은 황제의 근위병 강뉴부대의 담화가 서려 있는 참전메모리관 옆 ‘이디오피아 벳’을 소개하고자 한다. 짜장면이 맞아요? 짜장면이 맞아요? 90년대인가? 정서법이 바뀌어 한참 우리가 우리에게 물어봤듯이에티오피아가 맞아요? 이디오피아가 맞아요? ^^에티오피아 명들의 발음에는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라 하면 화를 내는 명도 있었다고 한다)가 더 가깝다고 단독, 1986년 방식 명칭은 에티오피아로 결정되었다 한다.
오랜 군 살림을 하신 부모님 덕에 고토이라는 가치는 없어졌지만. 그때 원두커피가 생소한 한국에 조용이, 김옥희 내외가 생두를 몸소 볶아 이디오피아 원두커피를 만들었고 이것이 강우 처녀의 로스트터리 커피숍의 구호가 되었던 것이다. 황제는 ‘이디오피아 벳’이라는 상호와 ‘원두(Green Bean)’를 몸소 보내주었다고 한다.
). 강원도 수춘은 넋적 고토이었고(우리 집만 빼면 아직도 다들 수춘에 살고 계신다) 한림대 재단에서 근무를 하며 가족끼린 주말에 운동회를 하지 않는다며, 운동회는 왜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개최하지 않느냐며 넉살를 떨던 시절 이디오피아 벳에서 가베 한 잔을 마시며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만록에 나오는 ‘성심딸대배움터(목하의 한림대배움터)’와 ‘아사코’의 인연을 상기나타내다 기억이 있는 끽다점이다(지금 젊은 고인들은 구봉산의 커피숍을 찾지만.
3대째 운영 중)창밖 공지천과 오래된 상과 의자가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해 있는데도 변하지 않았음에 방심감(?)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랴? 지금은 2대 관찰숙 대표님이 운영하시는데 백발인데 나름 멋있으시다 ^^(근간엔 교객가 업을 잇고 있다는데. 허나, 고등배움터·대배움터를 대전서 나오면서’수여 우백호’, ‘오정동 흑고무신짝’ 등이 더 친근미 있게 느껴진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에도 늘 이 계급 나절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3대째 운영 가운데귀며, 날도 쉬는 날이 없다 한다. 이디오피아 벳문을 열면 셀라시에 황제가 가장 미리 맞이한다”제실 근위대에게 강뉴(무규율에서 규율를 확립하다 또는 초전묵사발)비행대대 라는 칭호를 수여한다”이디오피아 벳 이란 상호는 황제께서 내린 상호라 합니다. 수춘을 기억한다면 공지천변을 걸으며 이디오피아 벳에서 로스트팅 된 가베를 마시며 이곳의 궤적와 기억을 함께 마시길 권해 드린다.
뭐 하는 물건일꼬?눈 가라앉다 날 수춘에서 에티오피아의 그림자을 찾아 보다. 커피를 만드는 기구들이 많다. 수춘에 엄동설한 기억 그리고 누이를 보내기 전에도 이곳 이 계급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