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즉후 러시아연방가 대적 동작를 개막하였으며 이는 거개 크리미아반섬와 도네츠분지의 정치적 격 과제에 집중되었는데 도네츠분지의 과우에는 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국토로 동정심받고 위공치사다. 우크라이나 국토 침격 동작는 러시아연방의 크리미아반섬 병탄으로 고개에 달했고, 그로부터 기분 지나지 않아 러시아연방의 뒷바라지을 받는 분리경고 세력과 우크라이나 도중 도네츠분지 갈등이 발발하였다. 제 국가가 우크라이나에게 다양한 수준의 뒷바라지을 제공하였으며, 백러시아는 2022년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앞 침격 그때 백러시아 국토 내 러시아연방군의 내왕을 제공하였다.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18](러시아연방어: российско-украинская война, 우크라이나어: російсько-українська війна)은 2014년 2월부터 개막된 내분으로, 우크라이나와 침격국 러시아연방 및 우크라이나 내 친러 분리경고 세력 성관 내분을 뜻한다.
2014년 2월 2일, 그때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구주 결합-우크라이나 사회 협정 교섭을 거부하고 구아주 경제 결합과 갈수록 긴밀히 연계하기로 걸음불량 가다 유로마이단 데모와 이강 깨다 혁명으로 쫓겨났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연방로 망명도주한 즉후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 봉기가 발발하였다. 2021년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국토 가 러시아연방군의 강화으로 양국 간 긴장이 격앙되었으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격으로 내분이 앞전으로 격화되었다. 그 외에도 내분 개막 후 8년 동안 해상 갈등, 도중버전, 다양한 정치적 긴장 격앙 등 제 사건이 발생하였다.
2014년 4월에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경고 세력이 러시아연방로부터 위정자, 각별군부대, 내실할 수 없는 군사 구문관 등의 뒷바라지을 받아 우크라이나 스탈리노주에 스탈리노 공민 공화국을, 루한스크주에는 루한스크 공민 공화국을 세워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19]2014년 8월에는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 군용 차량 대열이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강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스탈리노대개 진입하기 개막했다. 3월 16일에는 러시아연방로 병탄불량는 아이스크림 주민투표를 열고 주민투표가 개통되다지 양일 후에는 아이스크림 공화국이 러시아연방 국토로 병탄되었으나 세계적으로는 동정심받지 못하고 위공치사다. 같은 계제 아무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군이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반섬로 양도하여 주 군략지구와 인프라스트럭처를 장악하고, 2014년 2월 27일에는 아이스크림의 입법부 건조물도 강점하였다.
도네츠분지 갈등은 결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의 뒷바라지을 받는 2개 괴뢰국 도중 정적인 내분으로 고착화되었으며 제 계단의 해결 계획에도 휴전이 끊임없이되지 않고 위공치사다. 2019년에는 우크라이나 행정가첨 우크라이나 국토의 7%를 러시아연방가 일시적으로 강점가운데귀라고 공고했다. [19] 2015년 2월 러시아연방와 우크라이나의 양국간 내분을 종식하기 위한 콴툼협정인 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이 체약되었지만 제 내분으로 인해 협공정 사항이 완차지게 지켜지진 못했다. [20] 러시아연방는 개입 계획를 감추러 계획했지만 러시아연방군이 도네츠분지에서 깨다 갈등에서 제 중요 전투에 참여하였고 난동한 때에는 우크라이나 내로 진입할 수 있는 군략대비대로 끊임없이하였다.
북대구미 규약 구조(N자동열차운전장치)는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 침격을 대비하고 위공치사다고 공격했지만 러시아연방 정부는 이를 내실했다. 긴장이 격앙되면서 러시아연방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확장을 논평하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입단을 결단코 금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22]2021년 초부터 2022년 1월까지 러시아연방는 백러시아와 함께 대규모 군사 주둔을 통석 우크라이나를 옹위하였다. [21] 2022년 9월 규격으로는 우크라이나 국토의 맥시멈 18%를 러시아연방가 강점했다.
3일 후인 2월 24일 푸틴 대통령은 무선전시 방영을 통석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를 공고하며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 뭍를 앞 침격하기 개막했다고 공고하였다. 러시아연방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로, 게다가 백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 북부를 침격하면서 러시아연방가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격불량 세계계급의 수많은 국가와 동아리가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의 국권과 세계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격렬하게 논평하였다. [23] 2022년 2월 21일에는 러시아연방가 공식적으로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을 국가승낙했으며 공고적으로 우크라이나 내 두 공화국이 수립된 고장에 러시아연방군을 발견하기 개막했다. 게다가 러시아연방 겨레연합경고을 주창하고 러시아연방의 사물할 권리를 부당하며 우크라이나는 소 계제 블라디미르 레닌이 수립했다는 틀린 주장을 펼쳤다.
경치[편집] 이 부분의 반절은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간입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 내분의 궤적적 경치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4] 추가로 러시아연방의 침격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하던 백러시아도 세계적인 불매결맹과 경제 금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4년 이강 제 국가에서 모 구성로든 부세되었던 대러시아연방 금지는 2022년 2월 이강 갈수록 강화되었다.
1994년에는 우크라이나가 소유한 핵간과를 포기하고 핵확산방예규약(핵확산금지조약) 입단에 동의하였다. [25] 규약 입단과 함께 구소으로부터 인계인수받아 가장귀고 있었던 핵간과가 거세 및 붕괴되었다. 1991년 소이 붕괴된 이강에도 러시아연방와 우크라이나는 긴밀한 간를 끊임없이했다. 탈소 시대와 오렌지 혁명[편집] 오렌지 혁명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9] 소이 붕괴된 이강 몇년간 동구권 국가들은 1993년 러시아연방 증정위기, 1992년 압하지야 갈등, 제1차 체첸 갈등(1994-1996년) 등 고장 내 안보 위협에 부분적으로 대거리하여 나토에 입단하는 동작을 보였다. 이에 대해 러시아연방의 지도층은 나토가 더 끝 동으로 증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미의 비공식적인 담보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27][28] 1999년 러시아연방는 구주 안보 규범의 사인국으로 “각 가맹국이 결맹 규약을 포함한 안보협정을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내속한 권리가 있음을 재동정심”하였다. [26] 그 댓가로 러시아연방, 영, 미연방은 부다페스트 만전 담보 각서를 통석 우크라이나의 국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 끊임없이에 동의하였다.
[34] 11월에는 그때 우크라이나의 국무총리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자로 선언되었으나 공선 참공인들은 제 투개표 조작 불신을 주장하였다. [35] 두 달간 오렌지 혁명으로 나다 제 대규모 데모가 발생해 공선 조작에 대해 반대하였다. 공선 유세 기간 도중 야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가 TCDD 다이옥신이 들어간 스테이플사에 마취되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고,[32][33] 나중에 유셴코는 이를 러시아연방의 사대개 가다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30][기미독립운동]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선에는 제 갑론을박이 발생했다.
앤서니 코더스먼에 따르면 러시아연방군의 군관들은 이렇다 색깔 혁명을 미연방과 구주이 이웃국을 공포정하게 만들고 러시아연방의 국가안보를 약화시키러는 계획라고 봤다. [37] 러시아연방의 푸틴 대통령은 2011-2013년 러시아연방 데모의 주체를 유셴코 대통령의 전 구문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 데모를 러시아연방에 오렌지 혁명을 일으키러는 계획라고 공격했다. [36] 오렌지 혁명은 가끔 21시기 초 구소 국가에서 깨다 제 데모와 함께 묶어 색깔 혁명으로 부르기구 한다. 우크라이나 대법이 본 대통령 공선를 부당 공선로 규칙, 무효화불량 재공선가 열렸으며 재공선 결말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으로, 도덕야 티모셴코가 국무총리로 집권하였고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궤주하였다.
나토 성원국의 감도은 엇갈렸는데 서구주 국가들은 러시아연방의 거부감을 네발 않기 위험 “성원국 걸음 도모”(MAP) 제출을 반대하였고, 반대로 미연방의 대통령 조지 W. 수금는 두 국가의 나토 입단을 추진했다. [39]2008년 부큐레슈티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가 나토 입단을 모색하였다. [38] 이 기간 푸틴을 지지하는 집회는 “반 오렌지 데모”라고 불렀다.
[42] 2022년 1월까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입단할 가망은 너무 희박했다. [43]유로마이단, 혁명과 친러 난동무상[편집] 이 부분의 반절은 유로마이단,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및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 내분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입단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41] 나토는 결국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엄동설한 MAP 제공을 거부하였으나, “두 국가는 나토 성원국이 될 것”에 동의하는 성명을 공고하였다.
우크라이나 입법부는 EU와의 궁극 협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승낙하였고,[46] 러시아연방는 우크라이나에게 이를 승낙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47]유로마이단이라는 명으로 불린 수 삭의 데모 끝에 2014년 2월 21일 야누코비치와 야 지도부는 조기공선 요구에 관한 동의 협정에 사인하였다. [45] 2013년 11월에는 야누코비치가 구주 결합-우크라이나 사회 협정에 사인하지 않으며, 갈음 러시아연방와의 간를 갈수록 긴밀히 하고 구아주 경제 결합에 입단하겠다고 갑작스럽게 걸음하면서 친 구주결합(EU) 데모가 대규모로 일어났다. 2009년 야누코비치는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선 입후보를 선언하였고,[44] 2010년 대선에서 궁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2] 이 법률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53]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어 고용 고장에서 부당적인 감도이 나왔으며[54] 러시아연방계 매스컴에서는 러시아연방 겨레이 당두한 위협에 처해 위공치사다고 말하면서 격양되었다. [55]2월 27일 국무총리 아르세니 야체뉴크의 과도행정가첨 수립되었고 조기 대통령 공선가 도모되었다. [48][49][50][51] 2월 23일에는 우크라이나 입법가첨 러시아연방어를 공무어로 지정한 2012년 말법을 폐기불량는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나중 날에는 야누코비치가 경도 키이우를 떠났으며 즉후 논핵 투표를 통석 대통령으로의 권한이 박탈되었다.
[49][56]크리미아반섬 내 러시아연방군 슬기[편집] 이 부분의 반절은 크리미아반섬의 정치적 격입니다. 내분 초기 러시아연방는 블랙시 함대 산하 약 12,000명목 병력이[55] 세바스토폴, 카차, 흐바르데이스코에, 과우치 등 크리미아반섬 각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어 고용자 인구가 많은 동부 우크라이나 고장의 정계 리더들은 야누코비치를 따른다고 말하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 내분이 발발하였다. 나중날에는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연방에서 다시 겉모양을 드러내고 러시아연방가 크리미아반섬에서 노골적인 군사 공작을 거행하고 있을 때 기자회견에서 기신이 여진히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선언하였다.
협정에 따라 크리미아반섬에 주둔 중인 러시아연방군은 우크라이나의 국권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법을 존중하며 국가 작정에 간섭하지 않고 강경을 넘을 때 “군신분증”을 보여주도록 요구한 채로 크리미아반섬 내 맥시멈 25,000명까지 러시아연방군 주둔을 허용하였다. [59] 내분 초기 협정에 따른 병력 규칙으로 러시아연방는 안보걱정를 제일하여 크리미아반섬에서 공작 거행을 위한 각별군부대 및 기타 난동 군부대를 배공치사기 위험 주둔 군사를 강화하였다. [57][58] 러시아연방군의 주둔은 우크라이나와 슬기 주둔 및 반송 협정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2005년에는 얄타 가 과우치곶 등대와 기타 해상 신호소에 엄동설한 감독권을 놓고 내분이 있었다.
[60]군사 공작 선언[편집]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가기 중인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은 공식적으로 선전포고가 뜸되지 않았다. 2009년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기체 내분을 해결하기 위험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2010년 4월 21일 하르키우 동의를 체약하면서 규약 경신권과 함께 크리미아반섬의 주류군 고한을 2042년까지 갱신했다. [55]1997년 체약된 소 블랙시 함개요 분파에 관한 원 규약에 따르면 러시아연방는 2017년까지만 아이스크림 반섬에 군사 슬기 주둔이 허용되었고 이강에는 아이스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에서 블랙시 함대를 포함한 전 주둔 중인 러시아연방군이 권귀해야 했다.
[63][64] 우크라이나 입법부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군사 걸음을 개시한 러시아연방를 “테러리즘국가”라고 거론하였지만[65]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연방를 향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강구 않았다. 궤적[편집]2014년 러시아연방의 크리미아반섬 병탄2014년 2월 20일에는 러시아연방가 크리미아반섬를 병탄하기 개막했다. [61] 하지만 본 선언은 우크라이나 행정가첨 선전포고로 이해하였고[62] 세계 제 매스컴들도 이를 따라 사물논의 선전포고로 뉴스하였다. 2022년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격이 개막될 때 크렘린궁전군은 침격을 공고하면서 정식 선전포고를 쓰지 않고 “각별 군사 공작”을 개시했다고 말했다.
[70] 이들은 군략적으로 중요한 곳을 장악하고 아이스크림 입법부 건조물을 강점했으며 입법부 건조물에 러시아연방의 국기를 게양했다. 새로 생긴 보안 건문소액 크리미아반섬와 우크라이나 뭍와의 길를 차단하였고 크리미아반섬 내복 양도도 각지의 검문소로 규칙되었다. [68] 2월 27일에는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군이 크리미아반섬 내를 공격하기 개막했다. [66][67][68][69] 2월 22상무 23일에는 러시아연방군과 각별군부대인 스페츠나츠가 노보로시스크를 통석 크리미아반섬로 진입하기 개막했다.
게다가 도중버 공난을 통석 러시아연방군이 우크라이나의 정부 관료, 입법부 의원의 휴대전화에 접근하여 통신을 방해했다. [76]3월 1일 러시아연방 두마가 정식으로 군사력 고용을 승낙하여 크리미아반섬 내로 러시아연방군과 군사 장비가 공식적으로 들어가기 개막했다. [75] 게다가 러시아연방가 도중버 공난을 결행해 우크라이나 정부, 주 매스컴, 소셜 대중매체 견련 웹도중트를 아웃시켰다. [71][72][73][74]나중날 러시아연방군이 크리미아반섬의 주 공항과 통신설비을 강점했다.
결국 3월 24일 우크라이나 행정가첨 반섬 철군을 명령했고 30일 전 우크라이나군이 크리미아반섬에서 권귀했다. 4월 15일에는 우크라이나 입법가첨 크리미아반섬를 일시적으로 강점된 고장이라고 공고하였다. [77][78] 3월 18일 러시아연방가 크리미아반섬를 공식적으로 병탄한 후 우크라이나의 군사슬기와 함선을 러시아연방군이 다 급습했다. [75] 이 나중날에는 남부 수군슬기를 포함한 남자있던 우크라이나의 군사 슬기와 기타 설비이 다 옹위당했다.
[81] 11월에는 나토는 러시아연방가 크리미아반섬에 핵간과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고했다. [82]2014-2015년 도네츠분지 갈등[편집] 이 부분의 반절은 도네츠분지 갈등입니다. [80] 푸틴 대통령은 크리미아반섬에 러시아연방군 임무부값 수립될 것이라고 공고했다. [79] 병탄 이강 러시아연방는 크리미아반섬의 군력을 강화하고 핵간과 위협을 가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깨다 초기 데모는 대개 우크라이나 신정부에 엄동설한 감정을 표출하는 구성로 나타났다. 친러시아연방 내분[편집] 이 부분의 반절은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 내분입니다. 도네츠분지 갈등의 기년체사기 (2014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83][85] 푸틴은 도네츠분지 고장이 ‘노보로시야’의 국부라고 말하며 분리경고자에게 당성을 교부했으며 노보로시야 고장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국토가 되었는지에 대해 경황망조감을 표출했다. [86]3월 말부터 러시아연방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강경에 병력을 끊임없이 결집해 4월까지 약 3-4만명이 모였다. [83][84] 하지만 러시아연방는 이 데모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향한 정치, 군사적 결합 전역을 개막했다. [83] 이 계단에서는 러시아연방가 데모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격로 규칙된 개입만을 가했다.
[55]우크라이나 정부는 3월 초부터 친러 데모를 진압하고 현지 분리경고 경기가를 체포했다. 분리경고 리더들은 러시아연방 데이터국과 간가 있었고 러시아연방 쪽 경영에 관심이 있는 명들로 바뀌었다. [55] 이 위협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병력을 내분 고장 갈음 러시아연방와의 강경으로 양도해야 했다. [87][55] 이 병력 배치는 우크라이나의 대거리을 방해하고 확전을 위협하는 데 고용했다.
[93] 5월 11일에는 스탈리노와 루한스크 2개 경고 격에 엄동설한 주민투표가 열렸다. [94][95][96]무장 내분4월 들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연방가 뒷바라지하는 분리경고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에 무장 갈등이 개막되었다. [89][90][91][92] 스탈리노 인공의 사령공인 이고리 기르킨에 따르면 4월에 이런 뒷바라지이 없었다면 하르키우나 오데사처럼 곧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88] 2014년 4월부터는 러시아연방 공민이 분리경고 경기을 완전히 감독했고 체첸인과 카자크 병력을 포함한 러시아연방 내 물재군과 러시아연방의 물재 뒷바라지을 받았다.
우크라이나군은 4월 15국부터 대테러리즘리스트 공작(자동열차운전장치)을 공고하였으나 대비가 부족했고 군부대 배치도 좋지 않아 공작이 빠르게 단절되었다. [97]4월 말 가다 우크라이나가 스탈리노주와 루한스크경고 감독를 잃었다고 공고했다. 4월 6국부터 제 도시의 행정청사를 강점하고 러시아연방로 가는 강경 길목, 거래 본고장, 방영국 및 기타 군략적인 기반설비을 장악했다. 분리경고자들은 각각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의 수립을 공고했다.
5월 들어 분리경고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도중 내분이 격화되자 러시아연방는 허위데이터전과 민병대 전투원, 공식 러시아연방군, 재래식 군사 뒷바라지 등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갈등 방식을 채택했다. [99][100][101]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선가 치러지고 나서는 1차 스탈리노 세계공항 전투가 발발했다. [98] 5월까지 우크라이나군은 자동열차운전장치 지구 가의 성분를 확보해 분리경고자의 증대를 금지하고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구사이 완결되면 걸음적인 공세로 전환하기 위험 군사를 배식공치사는 방식으로 전역을 거행했다. 게다가 러시아연방의 침격 가망에 대비해 “만차지다 전투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징모제를 다시 부활한다고 밝혔다.
[91] 6월부터는 러시아연방가 간과, 장갑차량, 군수푸을 조금씩 보내고 있었다. 7월 말 우크라이나군은 스탈리노를 옹위하고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강경의 감독권을 확보하며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간 길를 차단하기 위험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강경을 향해 대규모 공세를 펼치기 개막했다. [102][103]:15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2014년 여름 내분이 최격앙에 달했을 때 러시아연방인 물재군이 전체 전투원의 15%에서 맥시멈 80%까지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스탈리노 세계공항에서 깨다 이 전투는 내분의 전환점으로 수많은 러시아연방인 “물재군”이 개입한 도중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경고 세력이 대규모로 전쟁한 처녀의 전투였다.
2014년 8월 러시아연방의 침격’노보로시야’의 기치 밑 뭉친 분리경고 세력이 잇단 군사적 궤주와 낙망을 겪자[105][106] 러시아연방는 2014년 8월 강경을 넘어 이른바 “뉴스경고적 호송대”를 발견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동작을 “몸소적인 침격”이라고 불렀다. [104]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공작 공성으로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은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았고 러시아연방군은 7월 중순부터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포격을 가하기 개막했다. 7월 28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사부르모힐라의 중요한 군략적 고지구와 중요 레일 본고장인 데발체베를 탈환했다.
[108]2014년 8월 우크라이나군의 대테러리즘 공작으로 친러 세력 감독 하의 국토가 급격하게 감축되었으며 러시아연방와의 강경에 근접했다. [109] 이고르 기르킨은 러시아연방의 군사 개입을 촉구했고 분리경고 세력의 민병대는 전투 객관이 부족하고 고장 주민들 도중에서 모병이 어려웠기 땜에 밀렸다고 설명했다. 이고르 기르킨은 8월 초 러시아연방군에서 ‘휴가’를 낸 러시아연방 군바리들이 도네츠분지에 도착하기 개막했다고 주장했다. [107] 우크라이나 국가만전담보 및 국방위원회는 11월에는 거개 매일 호송값 도착한다고 고변(11월 30일 맥시멈 9계단 호송대)했고 호송개요 선하은 대개 간과와 약이라고 말했다.
[110]공기이 악화되자 러시아연방는 하이브리드 갈등을 포기하고 2014년 8월 25국부터 재래식 침격을 개막했다. [109][111] 나중날 러시아연방 국방부는 군바리들이 ‘우연히’ 강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라고 말했다. 기르킨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몸소 노보로시야라고 명붙인 국토에서 벌어진 갈등에서 궤주하는 것은 크렘린궁전의 권력과 대통령 일개인의 권력을 위협받을 것이다.
[117] 같은 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페트로 군로셴코는 현 공작을 외부의 침격에 대거리하는 우크라이나의 “2014년 애국갈등”이라고 말했다. [118][119] 8월 25일에는 러시아연방의 군용 차량 대열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아조프해 바닷가의 노보아만남스크로 넘어왔다는 고변가 들어왔다. [115]2014년 8월 24일에는 250값 건너다 장갑차량와 대포의 뒷바라지을 받은[116] 러시아연방 공수군부대에게 암브로시이우카 고을이 강점당했다. [112][113][114] 니콜라이 미트로힌의 가정에 따르면 2014년 8월 일로바이스크 전투 그때 도네츠분지의 분리경고 세력에 2만명에서 25,000명목 병력이 있었는데 40-45%만이 ‘도네츠분지 고장민’이었다고 말했다.
[121][122][123][124][125] 결국 러시아연방군은 노보아만남스크를 강점했으며[126] 고을에 거주지 거소액 등기되지 않았던 전 소러시아인을 추방하기 개막했다. [127] 이와 동시에 두우폴에서는 친러 세력의 도치 데모가 열렸다. [120] 두우폴을 향해 공격했다. 이 대열은 수 주도안 친러 세력의 거동이 노상 나타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루한스크 근린에서 공수끄트머리 끊임없이 장갑차량 2대를 탈취했으며, 딴 고장에서는 공거 3대와 장갑차량 2대를 파괴했다고 고변했다. [130][1기미독립운동] 러시아연방 정부는 전쟁 사물을 내실했지만[1기미독립운동] 8월 18일 러시아연방의 국방각료 세르게이 쇼이구는 제76근위공수끄트머리에게 “군사 임무를 공성적으로 거행했으며” “용기있고 거성스러운 걸음”으로 러시아연방의 으뜸 계급 표훈 중 단독인 반보 표훈을 교부했다. [129]프스코프에 주둔하던 제76근위공수끄트머리이 지난 8월 우크라이나 국토 내로 진입해 루한스크 근린에서 전쟁을 벌여 80광명이 가다 것으로 전해졌다. [127][128] 결국 유엔 만전 담보 이계급가 긴박 공론를 소모했다.
[133] 러시아연방의 야 의원인 리플렉터 실로스베르크도 이와 같다 성명을 공고했지만 실로스베르크는 자국에서 발견된 전투원이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 병력으로 가장한 “공식 러시아연방군”이라고 말했다. [134]2014년 9월 초 러시아연방 공영 무선전시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다 러시아연방군의 장례식에 대해 뉴스했지만 그들은 “러시아연방 공간”를 위험 싸울리다 ‘물재군’이었다고 말했다. [132] 하지만 러시아연방의 반정부 계통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연방군의 지도가첨 2014년 여름부터 군바리들에게 전역하고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전쟁하라고 돈을 지불했으며 우크라이나 내로 군바리을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1기미독립운동]연방평입법부(러시아연방 상원) 회두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와 러시아연방 공영 무선전시은 러시아연방군이 우크라이나 내로 들어왔다는 걸 동정심했지만 어디까지나 ‘물재군’일 뿐이라고 말했다.
[135]두우폴 공세와 1차 민스크 휴전9월 3일 군로셴코는 푸틴과 “영구적인 휴전” 동의에 공성했다고 밝혔다. [136] 러시아연방는 이 소식을 내실하며 기신은 내분의 본사국이 아니며, “내분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 논의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32] 러시아연방 공영 무선전시은 이 때 난생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등사한 군바리 장례식에 대해 뉴스하였다. 통합 러시아연방당의 중진 위정자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도 ‘곤제국’을 위험 싸울리다 ‘물재군’을 상찬하는 발언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연방 데이터기관이 두우폴 근린 고장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드레이 켈린은 “그 쪽에 물재군이 있을 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139][140] 9월 5일 러시아연방 상임 OSCE 간판인 안드레이 켈린은 친러시아연방 분리경고 세력이 두우폴을 “해방할 일”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137][138] 군로셴코가 이강 기신의 주장을 철거하였다.
[143][144][145]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과 2014년 말까지[편집] 2014년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강경 고장 포격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11월 7상무 12일에 나토 관료들은 러시아연방에서 총 32개요 공거, 16문의 곡사포, 30개요 선하자동차 부값 우크라이나 내로 진입했다고 말하며 러시아연방군의 사물를 동정심했다. [142]2014년 9월 5일 체약된 정전 협정인 민스크 협정에서 우크라이나와 스탈리노주, 루한스크주 내 분리경고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고장이 분리되었다. [141] 2014년 9월 4일 나토군 군관는 우크라이나 내에 수천 명목 러시아연방 공식군이 공작 가운데귀라고 밝혔다.
[82][147] 나토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연방군의 공거, 포, 기타 중장비가 증가했다고 말하며 모스크바에는 철군을 꾸준히 요구하였다. [148] 시카고 공간 과제 협입법부는 2014년 중반 끄트머리 군사 장비가 대거 유입된 후 친러 분리경고 세력이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기능적 이점을 세상고 위공치사다고 검토했다. 브리들러브는 “러시아연방의 공거, 포, 방공 계통, 러시아연방군 전투병이 목격되었다”라고 말했다. [146] 미연방의 대수장군바리 필립 M.
러시아연방 분리경고 세력의 기능적 이점은 내분 강학 센터에서도 같다 검토을 내놓았다. [149] 11월 12일 유에 만전 담보 이계급 공론에서 영 간판는 러시아연방가 의도적으로 구주 안보 공조 구조(OSCE)의 관측 임무를 겨우 2 km 광의 강경만 접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관측 임무를 위험 띄운 드론의 거동을 방해하거나 격추하는 등 방해하고 위공치사다고 말했다. 러시아연방 측은 우크라이나의 열가냘프다 전자전쟁 계통를 이용했다. 효과적인 대공 간과인 부크 유도미사일(MANPADS)이 우크라이나 공군력을 압도했고, 러시아연방제 드론이 데이터를 제공했으며 러시아연방의 보안 통신 계통가 우크라이나의 통신데이터검토을 방해했다.
군로셴코는 기신의 걱정로 공간 경제 포럼디스커션 고비 일정을 단축했다. [153]2015년 2월 15일에는 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으로 불리는 내분 종식을 위한 새로운 협정이 체약되었다. [152] 군로셴코는 1월 21일 2선언이 건너다 추가 러시아연방군 강화, 200값 건너다 공거와 무장 병력 호송값 강경을 넘어온다는 고변를 공고하며 굉장히 위험한 공기이라고 설명했다. [150]2015년 1월에는 스탈리노, 루한스크, 두우폴 3개 주 전선이 있었다.
[155]2015-2022년 결빙내분화[편집] 도네츠분지 갈등의 기년체사기 (2015년), 도네츠분지 갈등의 기년체사기 (2016년) 및 도네츠분지 갈등의 기년체사기 (2017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갈등은 국토 기복가 거개 없는 교착 공기에 빠졌다. 2015년 9월 유엔 자연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는 도네츠분지 내분으로 총 8선언 끝의 역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공고했다. [154] 2월 18일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전까지 도네츠분지에서 결국으로 제일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던 데발체베 전역에서 권귀했다.
데발체베 전투가 끝나고 나서 수삭 간 감독선을 따라 소도모성 전쟁이 끊임없이 이루어졌지만 국토 기복는 깨다 않았다. 양 측은 참호, 엄폐호, 굴 등등이 이루어진 복잡한 참호 계통를 계획해 내분을 정적인 참호전으로 전환시켜 주둔 고장의 방비력을 강화했다. 겨우 이 계제에도 전쟁 몸체가 아에 멈추진 않았고 반복해서 휴전 교섭이 이루어졌으나 안 저도둑 전쟁과 내분이 끊임없이되었다. 이 계제 내분은 포병끼리의 전쟁, 각별군부대 공작, 참호전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159]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총 29계단의 휴전 교섭이 체약되었으며 각각의 교섭의 유용기간은 간과한이 될 계획이었지만 휴전 교섭은 다 내분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다. [160][161][162]미연방과 기타 세계 정부 간자들은 데발체베 고장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활발하게 거동하고 위공치사다고 고변했다. [158] 그럼에도 도네츠분지 고장은 갈등지구로 남자 과월 수십 명목 군바리과 일반인이 불휘했다. [156][157] 이 그때의 교착 공기로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은 한동안 “결빙내분”이라는 레터르가 붙어졌다.
[164] 2015년 또 딴 병력 계산 통이계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친러 세력보다 2만명에서 4만명 더 많은 것으로 총계되었다. [165] 2017년 규격 평균적으로 3일에 1명 꼴로 우크라이나군 군병가 불휘했으며[166][167] 러시아연방군은 6선언, 분리경고 세력 군사는 4만명이 있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추가로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연방 데이터총국(GRU) 끊임없이 병력 1,000명이 거동중인 것으로 계산되었다. [163] 2015년 규격 친러 분리경고 세력의 병력은 36,000명 격인데(동계제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34,000명) 이 중 8,500명에서 1만명이 러시아연방군으로 가정되었다.
이렇다 건립의 지도부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예원는 우랄 고장에서 모병 거동이 어떻게 가기되는지 공고했다. 이 동아리는 대개 건빵 퇴역군바리 위대개, 그 외에도 군사 객관이 있는 경관이나 소방공무원을 가운데으로 모병 거동을 가기했다. [170] 전역자 대회이나 준군사건립을 통석 도네츠분지로 향하는 병력 공모도 공고적으로 이뤄졌다. [168][169]러시아연방 내 매스컴에서도 러시아연방군의 불휘, 상이 경우가 뉴스되었다.
러시아연방의 ‘반고병법’에 따르면 고병은 “러시아연방 연방의 이익에 반하는 고지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명”으로 공정했다. [171] 신병들은 내분 고장에 도착한 후에야 간과를 보편화받았다. [171]물재병은 러시아연방 고병법의 규칙을 피하기 위험 어디까지나 “뉴스경고적 보조을 제공한다”는 고지으로 규칙된다는 내용의 기록를 발부받았다. 물재병 한 명을 모병, 전선으로 배공치사는데 난동되는 경비은 약 35만 루블(약 600미불)이며 예에 과월 급료으로 6만에서 24만 루블이 추가로 들었다.
[176] 게다가 러시아연방는 OSCE가 두 강경 너머로 관측 임무를 증대하는 대에도 반대했다. [177]2016년 8월 내분 증대[편집]2016년 8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러시아연방의 대통령 보좌공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와 콘스탄틴 자툴린에 엄동설한 2014년 전화 유통화폐 도청 내용은 공고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 거동가에 대해 은밀한 경비 뒷바라지을 논의하고 행정청사 강점 및 기타 내분을 일으킨 제 걸음들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다. [172][173][174][175]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연방 적십자 간판인 이고르 트루노프는 이들 호송값 뉴스적 물재 제공 송달 길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논평했다. 가끔 러시아연방군은 적십자 인력으로 가장하여 양도하기구 했다.
크리미아반섬의 강경 검문소도 같이 격리었다. [182] 8월 10일에는 러시아연방 연방보안국(FSB)이 “우크라이나의 테러리즘 공난”을 막았으며 크리미아반섬의 아르먄스크에서 군바리 2명이 무장 갈등로 불휘했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 거주민 수 명이 사건 견련으로 체포되었다고 공고했다. [179][180][181]2016년 8월 8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연방가 크리미아반섬의 경계를 따라 러시아연방군을 가파했다고 말했다. [178] 2014년 2월 초 글라지예프는 우크라이나 내 제 친러 당들에게 어떻게 고장 행정청사를 점거할지, 그 후에 무엇을 할지, 무슨 요구를 할지에 대해 몸소적으로 명령를 내렸으며 게다가 “러시아연방의 부하를 보내는 것을 포함해” 러시아연방의 몸소적인 뒷바라지을 약속했다.
[188][189]2018년 케르치 해협 사건러시아연방는 2014년부터 케르치 해협을 사물상 장악했다. 2017년에는 우크라이나가 케르치 해협 고용에 엄동설한 구해를 세계법청에 요청했다. [186][187] 군로셴코는 러시아연방가 앞 침격을 대비하고 위공치사다고 경고했다. [183][184][185] 이강 러시아연방는 크리미아반섬의 군력을 급격하게 가파했으며 강경 근린에서 군사 교련과 병력 양도도 이어졌다.
이 길에서 우크라이나 마도로스 25명도 구류형되었다. [191][192] 나중 날인 2018년 11월 26일 우크라이나 입법부는 우크라이나 바닷가 고장 및 러시아연방와 강경을 맞닿는 고장에 대해 계엄령을 뜸하는 문제을 압도적인 표차로 경유시켰다. [190] 2018년 11월 25일 오데사에서 두우폴을 향해 항양하던 우크라이나 수군 배 3척이 러시아연방군에게 나포되었다. 2018년부터는 러시아연방가 케르치 해협에 러시아연방 뭍와 크리미아반섬를 잇는 아이스크림 대교를 건설해 케르치 해협을 경유하는 배 규모를 규칙하였고, 새로운 경유 규칙을 설정하고 우크라이나 배을 곧잘 구속하기 개막했다.
[194] 2019년 12월에는 우크라이나와 친러 분리경고 세력이 군로 교환을 개막했다. 12월 29일에는 약 200명에 달하는 군로가 상호 교환되었다. [194] 2019년 5월에는 새로 뽑힌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볼로디조미르 젤렌스키가 도네츠분지 갈등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했다. [193]2019-2020년의 공기2019년 가뭄해에만 내분으로 우크라이나군 110명이 불휘했다.
[200][201]2021-2022년 러시아연방군의 강화과 위기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러시아연방는 우크라이나와의 강경 지구에서 대규모 군력 강화을 개막했으며, 이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러시아연방와 백러시아에서 2차 군력 강화이 이어졌다. [202] 이 그때 러시아연방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공난할 도모이 없다고 거듭 내실하였다. [199] 2019년부터는 러시아연방가 소러시아인 약 65만명 끝에게 러시아연방 국내여행권을 발부했다. [195][196][197][198]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2020년에는 약 50명목 우크라이나 군바리이 불휘했다.
[206] 미연방은 러시아연방의 침격 도모을 예측한 제 고변서도 발행했다. [206]러시아연방의 공격과 요구침격 수 삭 다터 러시아연방 관료들은 우크라이나가 긴장 공기과 반러 가슴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러시아연방어 화자를 강압하고 위공치사다고 공격했다. [205] 데이터기관은 러시아연방군의 주 결집지 디렉터리과 침격 시 살상하거나 감옥살이할 주 인물의 리스트도 공고했다. [203][204]2021년 12월 초 미연방은 러시아연방의 내실과 달리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강경 지구에서 러시아연방군의 장비와 병력이 촬영된 달별 사실과 함께 러시아연방의 침격 도모에 엄동설한 데이터를 공고했다.
[207][208] 푸틴의 주장은 세계계급에서 받아들가능성지 않았고[209] 러시아연방의 거량남살 주장 게다가 계기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어졌다. [210][211][212]2월 21일 강연에서[213]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국가격를 가진 적이 없다”는 부당확한 주장을 반복하며 우크라이나의 사물 합법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2021년 12월 9일에는 푸틴이 “반러가슴이 공동체남살을 향한 시작”이라고 말하기구 했다. 러시아연방는 우크라이나, 나토, 기타 구주결합 국가들에게 제 가장귀 안보 견련사항을 요구했다.
[217][209] 우크라이나는 아조프 단결나 보수파 부채꼴톱니바퀴와 같이 네오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와 연관된 극보수파 소도모성 세력에 시달리고 위공치사다. [218][216] 하지만 검토가들은 푸틴의 말가 굉장히 과장되었다고 지적했다. [23]푸틴은 우크라이나 계급와 정부를 신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경고(네오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가 지배하고 위공치사다고 틀린 주장을 펼치면서 제2차 공간 대전광역시 그때 도이칠란트 강점 하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이나 부역자의 궤적를 환기하며[215][216]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 도이칠란트의 진정한 고혈자는 유태인이 아닌 러시아연방 그리스교인이라는 반유대경고적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214] 푸틴은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연방 국토에서 말했던 곳에서 분리된 ‘소련 공화국’을 각내 우크라이나를 만들었다고 잘못 말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이 제2차 공간 대전광역시 이강 우크라이나의 국토를 동구주으로 확장했으며 1954년에는 니키타 흐루쇼프가 “약하하다 곡절로 크리미아반섬를 러시아연방에서 빼앗아 우크라이나에게 줬다”라고 주장했다.
[222] 미연방과 나토는 이 요구를 거부했다. [223]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입단 급소에 대해 딱히 감도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입단을 정식으로 금지하라는 러시아연방의 공식 규약 요구는 나토 규범 10조에 따른 “나토 개통되다 문 방책”에 위배된다는 곡절로 거부했다. [219]러시아연방는 2차 군사 증원 길에서 미연방과 나토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입단을 방예할 수 있는 법적 감옥살이력 있는 동의와 함께 나토의 동구주 입단국에 주둔 중인 다국적군의 권귀를 주장했다. [219][215] 유태인인 젤렌스키는 기신의 할아버지는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에 맞서 싸운 소군에 복무했으며,[220] 젤렌스키의 가족 중 3명은 홀로코스트로 불휘했다.
[226][227] 도네츠분지에서 러시아연방군이 뒷바라지하는 무장 세력의 포격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우크라이나와 맹방은 이를 우크라이나군을 자극하거나 침격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계획로 검토했다. [228][229][230] 2월 18일에는 스탈리노와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이 경도에서 일반인에게 긴박남교부대명령을 내렸으나[2기미독립운동][232][233] 세계 관측통은 만차지다 대피를 위험서는 수 삭이 걸릴 것이라 전망했다. [225] 우크라이나와 친러 분리경고 세력 양 측 남김없이 상호가 미리 공난을 개막했다고 공격했다. [224]앞 침격의 조짐[편집]도네츠분지의 전투는 2022년 2월 17국부터 굵다 격화되었다.
[235][236][237]2022년 2월 21일 22시 35분(UTC+3)[238] 푸틴은 스탈리노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을 정식으로 국가승낙한다는 “우크라이나 무상에 관한 강연”을 공고했다. [239] 같은 날 저녁 푸틴은 도네츠분지에 러시아연방군을 배공치사도록 명령했으며 이는 “평화끊임없이 임무”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235] 그때 수많은 허위 데이터 영상은 아마추어 수준으로 도네츠분지에서 가다 공난, 촉발, 대피는 러시아연방가 꾸민 일이라는 근거가 나왔다. [234] 러시아연방는 공영 매스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연방를 공난하는 겉모양을 보여주겠다며 거개 겨를 척도로 조작된 영상을 틀어주는 가짜 기 공작을 거행하는 등 허위 데이터 유포도 증속했다.
[243] 나중 날에는 우크라이나 입법가첨 30일간 거국에 무상무상를 공고하고 전 대비대 구사을 명령했다. [244][245][246] 러시아연방는 키이우에 있는 대사관을 권귀하기 개막했다. [242] 이에 대거리해 젤렌스키는 대비대 징모을 명령했다. [240][241] 2월 22일에는 연방평입법가첨 만구일담로 푸틴에게 러시아연방 외부에도 군력을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교부했다.
[249][250] 젤렌스키는 러시아연방가 주장하는 신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경고라는 주장을 내실하고 도네츠분지를 공난할 귤정도 없다고 말했다. [251] 2월 23일에는 크렘린궁전 대변자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스탈리노와 보로실로브그라드의 분리경고 세력 리더들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일반인 역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군사적 뒷바라지을 호소하는 간찰를 보냈다고 밝혔다. [252]2022년 러시아연방의 앞 침격2022년 2월 24일,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고 탈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화하기 위한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를 공고하며[253][254] 2022년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격이 개막되었다. [247]2월 23일 밤에는[248] 젤렌스키가 러시아연방어 강연을 통석 러시아연방 거주민들에게 갈등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256][257] 젤렌스키는 18세에서 60세 도중 전 우크라이나 남 거주민에 대해 총구사령을 공고하고 계엄령을 내려 국외 출국을 금지했다. [258][259]난생처음 러시아연방군의 공난은 백러시아에서 키이우 각도을 향한 북부 전역, 하르키우 각도을 향한 북동부 전역, 크리미아반섬에서 올라오는 남부 전역, 스탈리노와 루한스크에서 전진하는 동부 전역으로 구성되었다. [260][261] 북부 전선에서는 키이우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군이 강하다 거역을 펼쳐 러시아연방군이 큰 낙본을 입어 3월 공격이 단절되었고 4월에는 낙후했다. [255] 수 분 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유도미사일 돌격이 개막되었고 뒤이어 제 전선에서 대규모 땅 공난이 이어졌다.
[262] 4월 19일에는 러시아연방가 하르키우에서 루한스크, 스탈리노까지 이르는 500 km 동안의 전선에서 새 공세를 개막했다. [263] 5월 13일에는 하르키우 근린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공으로 러시아연방군이 낙후했다. 5월 20일에는 길었던 아만남스탈 제철소의 옹위전 끝에 두우폴이 공락되었다. 4월 8일 러시아연방군은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대수장군 도솔하에 남부와 동부 우크라이나로 배식치되었으며 북부에서 권귀한 국부 군부대는 도네츠분지 고장에 재삽입되었다.
[266][267] 우크라이나군은 8월에는 남부에서, 9월에는 동부에서 역습을 실시했다. 9월 30일에는 러시아연방가 침격 기간 부분 강점한 스탈리노주, 헤르손주, 루한스크주, 자포리곧잘 4개주를 병탄했다. [268] 러시아연방의 4개주 병탄은 공간 각국에서 동정심받지 못했고 큰 논평을 받았다. [264][265] 러시아연방군은 선두에서 멀찌가니 끝나다 군사 목표물과 속간 목표물을 끊임없이 포격했다.
[270][271]러시아연방의 침격은 세계적으로 침격 갈등으로 공격받았다. [272][273] 유엔 총공론에서 러시아연방군의 앞 권귀를 요구하는 각오안을 경유했으며 세계사법논죄소는 러시아연방의 군사 공작을 단절하라고 명령했고 구주 평입법부는 러시아연방의 성원국 격을 정명령켰다. 수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연방에게 제 경제 금지를 가했으며[274] 우크라이나에게 뉴스적, 군사적 뒷바라지을 제공했다. [269] 동류 9월 21일 푸틴이 군사 교련을 받은 30만명목 일반인과 징모 대상으로 갈래된 2,500만명목 러시아연방 일반인을 징모하겠다는 구사령을 공고불량 러시아연방를 떠나는 편도 비행기표들이 매진되기구 했다.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은 제 자연권 유린를 대동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3선언 끝의 일반인 역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들 거개은 2014년에서 2015년 도중에 발생했다. [276] 내분 지구에 사는 주민의 양도권도 규칙되었다. [275]자연권 유린 과제[편집] 도네츠분지 갈등 기성관 자연권 공기 및 러시아연방의 갈등 범법 § 우크라이나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016년 이강 우크라이나 정부 장악 고장에서는 이 동작가 줄어든 반면 분리경고 세력이 장악한 고장은 여전히 끊임없이되었다. [278] 양 측이 금지른 구문 등 가학에 엄동설한 검사는 거개 진전되지 않았다. [279][280] 유엔 자연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에 따르면 3개의 무선전시 경로이 강제로 격리는 묘사의 자유 유린 동작도 발생했다고 고변했다. [277] 내분 초기 다년동안은 양 측이 자의적인 구금이 발생했다.
[281] OHCHR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약 4선언목 구금자들이 구문과 가학를 당했으며 이 중 약 1,500명이 정부군에게, 2,500명이 분리경고 무장 동아리에게 당월한 것이며 성폭력 피해자도 340명이 발생했다고 고변했다. [282]견련 과제[편집]기체 내분201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연방의 천연 기체를 구주에 판매하는데 거쳐가는 주 반송로였으며 기체 수운 길에서 우크라이나는 연중 약 30억 미불의 내왕료를 받아 우크라이나 내에서 소득성이 제일 높은 수출공업에 등극했다. [283] 하지만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를 곡행하는 노드스트림 파이프라인을 움직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기체 수운량도 꾸준히 줄였다. [279] OHCHR은 내분 견련 성폭력 사건도 고변받았으나 “성폭력이 우크라이나 동부 고장의 정부군이나 무장동아리가 군략적 혹은 방법적 고지을 위험 고용했다는” 믿을만한 계기어가다 없다고 밝혔다.
[284][285] 이강 도네츠분지 갈등이 발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연방산 기체 도입 의지도를 줄이기 위험 도모했던 끊임없이우스카 기체전의 우크라이나 몸체 셰일기체 매장지 개척 경영이 단절되었다. [286] 결국 EU 에너지 담당 기원후공인 귄터 외팅거가 우크라이나에 엄동설한 공급망과 EU를 향한 교제 거간를 위험 발견되었다. [287]2014년 5월에는 이바노프란키우스크경고 아등이-포두-우주호로드 기체관이 촉발로 고장되었다. [283] 2014년 2월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이 발발불량 기체 경지으로도 깊다 긴장 공기가 증대되었다.
[288] 2014년 6월 17일에는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기체를 가금 미지급을 곡절로 규칙한지 날도 되지 않아 폴타바주에서 기체관이 촉발했다. 우크라이나의 내무부 각료인 아르센 아바코울리다 나중날 기체관 촉발은 폭렬탄이 터져 발생했다고 밝혔다. [289]러시아연방는 2018년 이강 우크라이나를 거쳐 구주으로 가는 기체 공급을 완전히 포기할 도모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연방 테러리즘리스트가 금지른 일이라고 공격했다.
[292] 기체프롬과 우크라이나는 2019년 러시아연방산 기체 수운에 엄동설한 5년짜리 공약에 동의했다. [293][294]2020년에는 러시아연방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터키스트림 천연기체관이 남동구주 고장의 기체 공급 양도을 우크라이나 횡절 기체관과 트란스발칸 기체관으로 향하는 수운을 곡행하여 바꿔놓았다. [295][296]2021년 5월 조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연방에서 도이칠란트로 향하는 노드스트림 2 기체관의 뒤 회사에 대해 카드의 미연방 대적국에 엄동설한 금지대답법(CAATSA) 금지를 포기했다. [290][291] 러시아연방의 공영 에너지 기업가 기체프롬은 이미 우크라이나를 거쳐 가는 기체 공급량을 많이 줄였고, 터키스트림이나 노드스트림같은 다양화한 기체관을 통석 우크라이나를 거쳐 가는 기체 수운량을 더 줄이겠다는 귤정를 밝혔다.
[297][298]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의 걸음에 ‘놀랍다’며 ‘낙망스럽다’고 감상을 표했다. [299] 2021년 7월에는 미연방이 우크라이나에게 도이칠란트과의 파이프라인 협정 선통에 대해 논평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300][301]2021년 7월 조 바이든 미연방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촉각세포 도이칠란트 국무총리는 러시아연방가 ‘노드스트림’을 “정치적 간과”로 고용할 과우 미연방이 금지를 개막할 수 위공치사다는데 동의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말까지 5천만 미불 비등의 끊임없이 가하다 에너지 견련 대부을 받으며, 도이칠란트은 우크라이나의 기체 반송료 낙본을 대상하고 우크라이나를 녹물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험 10억 미불 도모성의 기금을 수립하기로 동의했다. 동류 러시아연방 행정가첨 동의할 과우 우크라이나를 각골통한 러시아연방산 기체 수운 공약이 2034년까지 갱신된다. [302][303][304]2021년 8월 젤렌스키는 러시아연방와 도이칠란트 도중의 노드스트림 2 천연 기체관이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구주 전체에 위험한 간과”라고 경고했다. 이 협정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연방의 기체 공급망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일을 막기 위험 생겨났다.
[307] 비트렌코는 “미연방과 도이칠란트의 공유 성명에서는 크렘린궁전이 기체를 간과로 고용한다면 적절한 대거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등는 목하 노드스트림 2의 운영사인 기체프롬의 100% 관계회사에 엄동설한 금지 대답를 기다리고 위공치사다”라고 말했다. [308]하이브리드 갈등[편집] 하이브리드 갈등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305][306] 2021년 9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프토하즈 CEO인 초자 비트렌코는 러시아연방가 천연 기체를 “지정학적 간과”로 고용하고 위공치사다고 논평했다.
[기미독립운동0] 이에 대거리해 우크라이나도 2016년 10월에 러시아연방가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반섬를 강점하고 도네츠분지의 분리경고 난동무상를 부추기어가다 도모과 견련된 2,337건의 메일을 공고한 수르코프 누출 사건을 도솔했다. [기미독립운동1]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연방가 펼치는 데이터전 게다가 하이브리드 갈등의 또 딴 전선에 해당월한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의 ‘제5열’로는 대개 고장당, 우크라이나 공당, 우크라이나 진보계급당, 러시아연방 그리스교 등의 친러 세력이 거론된다. 러시아연방-우크라이나 갈등은 비전통적인 길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갈등의 성분도 포함하고 위공치사다, 러시아연방는 2015년 12월과 2016년에 공간 처녀로 공성한 경주망을 향한 도중버 공난인 우크라이나의 경주망을 해킹하였고[309] 2017년 6월에는 미연방이 그때 나다 도중버 공난 중 제일 큰 도모성라고 밝힌 대규모 공급망을 향한 도중버 공난도 있었다.
2014년 4월, 러시아연방의 뉴스거리 경로인 러시아연방 1과 N무선전시에서는 한 경로에서는 한 남이 파시스트적인 우크라이나 깡패의 공난을 받았다는 뉴스를 내보냈는데, 딴 경로에서는 똑같은 남이 보수파 반러 급진경고 민병개요 교련에 경비을 뒷바라지하고 위공치사다는 소식을 뉴스하고 있었다. [기미독립운동6][기미독립운동7] 또 딴 경로에서는 그 남을 ‘신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경고’를 믿는 명으로 뉴스하는 등 상호 배리된 소먹이 동시에 방영되었다. [기미독립운동8] 2014년 5월에는 러시아연방 1에서 우크라이나의 만행에 엄동설한 담화를 방영하는데 2012년 카슈가르 연방관널보자기 공작 광경을 보여주었다. [기미독립운동2][기미독립운동3][기미독립운동4]러시아연방의 프로파간다와 허위사물 유포[편집]갈등 중 대중의 노발대발를 불러일으키기 위험 가짜 데이터가 곧잘 고용되었다.
ru는 스탈리노 세계공항을 탈환했을 그때 우크라이나군이 죽인 고혈자 사실을 2013년 시리아아랍공화국 내전에서 부비등한 어린이 사실을 보여주었다. [320]2014년 6월에는 몇 러시아연방 공영 매스컴이 우크라이나군이 백린탄을 고용하고 위공치사다고 뉴스했는데, 그 근거로 2004년 이라크에서 미군이 백린탄을 고용하는 영상을 내세웠다. [기미독립운동9] 2014년 7월에는 페르비 카날이 러시아연방어를 하는 3세 가랑이 우크라이나 겨레경고자에게 십자가형을 당해 살상당했단 걸 목격했다는 부녀의 면담를 뉴스했는데, 그때 못박혔다고 입증한 슬로비얀스크의 가구이 사물 사물하지 않는 가구이었고, 사건 몸체도 사물하지 않았던 가식으로 밝혀졌다. [기미독립운동9] 같은 달 러시아연방의 뉴스거리 통신사인 Life.
루한스크 나성의 한 고분의 과우 2014년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고장 영안낙심 전기가 끊어지자 파해쳐졌다. 세계엠네스티는 2014년 수백 널보자기 사체로 가득히 찬 공동체고분에 엄동설한 러시아연방의 주장을 검사했고, 결말 러시아연방와 우크라이나 양측에서 법을 순봉하지 않은 초법적인 제 처형 경우를 발견했다. [323][324][325]러시아연방의 검사 구조인 로스콤나조르는 러시아연방 정부에서 나온 공고만을 매스컴이 뉴스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과우 벌금형 또는 매스컴 차단을 거행할 수 있고[327] 러시아연방 내 전 매스컴과 배움터에 이 갈등을 “각별 군사 공작”으로만 말하도록 명령했다. [321][322][기미독립운동7][기미독립운동9]2022년 러시아연방 공영 매스컴은 우크라이나 동부 고장에서 러시아연방인이 거량 남살되었으며 공동체 고분이 발견되었다고 뉴스했다.
[330] 러시아연방의 야 위정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연방 내에서) 러시아연방 공영 매스컴이 “가식말의 괴짜”이라는 건 가상하다 수 없으며, “불행히도 대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는 명들에게는 설복력도 높다”라고 말했다. [3기미독립운동] 나발니는 트위터에서 러시아연방 공영 매스컴인과 같은 ‘갈등 본사자'(warmongers)들은 “결단코 전범으로 간주해야 하며, 편집장부터 뉴스거리쇼 가기자, 뉴스거리 엮은이까지 다 [이들은] 언젠가 금지를 받고 논죄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332]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젤렌스키는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푸틴과 러시아연방 매스컴들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고변 러시아연방의 보호를 난동로 하는 러시아연방 겨레을 구박하는 신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경고자들이 모여 위공치사다고 공격했다. [328] 2022년 3월 4일에는 푸틴이 러시아연방군과 그 공작에 엄동설한 “가짜 뉴스거리”를 유포하는 명에게는 으뜸 15년형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규범에 사인했으며[329] 이강 국부 매스컴이 우크라이나에 엄동설한 뉴스를 단절하였다.
[335]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연방가 발의한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즘 단장 퇴치와 견련한 유엔 총공론 각오안 A/C. 3/76/L. 57/Rev. [333][334][324] 매스컴인 나탈리아 안토노바는 “목하 러시아연방의 침격갈등은 선전을 통석 꼭 제2차 공간 대전광역시 계제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 도이칠란트을 막기 위험 가다 수백만 명목 러시아연방 군바리의 유산을 잇는 것처럼 변모하였다”라고 말했다.
사실로 각오안 채택을 거부한 또 딴 국가는 미연방으로 러시아연방가 이와 함께 선전의 계기를 잡아두고 위공치사다. [336][337] 유엔 경제 계급 이계급(ECOSOC) 미연방 부간판는 러시아연방가 발의한 각오안에 대해 “가국을 폄하하는 러시아연방의 허위 데이터 선전전을 합법화하러는 얄팍한 계획이며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 단장를 종식불량는 냉소적인 제일을 고용해 근대 구주 궤적를 곡해된 소 규격 담화로 광고하러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338]러시아연방-나토 간[편집] 러시아연방-나토 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1 채택을 거부하며 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즘, 신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경고, 기타 인종 차별과 인종경고, 외국인 미움와 견련된 무관용의 근대적 묘사 구성에 대해 거스르다 안을 반대했다는 우크라이나를 친국가계급주의독일노동당적 국가라고 러시아연방가 주장하였다.
나토 항공기어가다 2022년 4월 말 나토 맹방 영공 근린에서 비행하는 러시아연방군 군용비행기를 추적하고 영격할 고지으로 제 계단 스크렘블을 했다. 겨우 러시아연방 항공기가 나토 맹방 영공에 진입한 적은 없었으며 만차지며 표준적인 방법으로 영격이 이뤄졌다. [339] 러시아연방의 외무부 각료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 갈등을 나토가 선전한 대리전이라고 주장하며[340] “아등는 나토와 갈등하고 위공치사다고 생각강구 않지만. 발트해와 블랙시 고공을 비행하는 러시아연방군의 군용비행기어가다 가끔 곳를 숨기거나 항공관제사와 연락하지 않아 민항기에게 잠재적인 갈등 위험이 사물한다.
불행히도 나토는 러시아연방와 갈등 가운데귀라고 믿고 위공치사다”라고 말했다. [341] 그때 영의 국무총리 보리스 존슨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돈벌이고 위공치사다는 라브로프의 주장을 내실했다.
[343]https://ko. wikipedia. org/wiki/%EB%9F%AC%EC%8B%9C%EC%95%84-%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_%EC%A0%84%EC%9F%81 위키백과. [342] 전 미연방 가운데데이터국(미국중앙정보국) 국장인 리언 패네타는 ABC 방영과의 면담에서 미연방은 러시아연방와의 대리전에 ‘의문의 가능성 없이’ 관여 가운데귀라고 밝혔다.